문학 속에 '한 문장'

목표는 항상 베일에 가린 법이다.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항상 철저한 미지의 그 무엇이다.

'사비나'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 그리고 끝내 가 닿고자 했던 사랑은 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목표는 항상 베일에 가린 법이다.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자신이 전혀 모르는 어떤 것을 갈망한다. 명예를 좇는 청년은 명예가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한다.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항상 철저한 미지의 그 무엇이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3부 10장 중에서

베일에 가린 목표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간의 바램이나 목표에 대하여 "인간이 의식적으로 내세우는 목표"와 "실제로 그 목표를 욕망하게 만드는 근원"을 구분하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줍니다.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겉으로 보면 목표는 명확합니다. '결혼하고 싶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다." 하지만 쿤데라는 묻고있습니다. "정말 그녀가 원하는 것이 결혼 자체일까?"

사실은 안정감, 사회적 인정, 외로움의 해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자신의 여성성에 대한 확인 등이 복잡하게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것을 명확히 알지 못하며, 그래서 결혼 후에 "내가 원했던 게 이게 아닌데?"라고 느끼게 됩니다.

즉 쿤데라가 말하는 "베일에 가린 목표"는 목표 그 자체가 아니라, 목표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욕망을 의미합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신을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동기를 완전히 알지 못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의 진정한 의미를 끝까지 다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일종의 존재론적 통찰입니다.

베일에 가려진 '사비나'의 삶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책 제목이 품은 '가벼움'의 서사를 온전하게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단연 '사비나'일 것입니다. 쿤데라는 '가벼움의 화신'인 그녀의 생애를 펼쳐 보이며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사비나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 그리고 끝내 가 닿고자 했던 사랑은 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녀의 종착점인 최종 목표는 어디인지 쿤데라의 텍스트를 따라가 봅니다.

화가 사비나의 생애는 언뜻 끊임없는 탈출과 배신의 궤적으로 보입니다. 그녀의 첫 번째 배반은 아버지와 규범적인 가족을 떠나는 일탈이었습니다. 이후 예술을 옭아매던 조국 공산당 보헤미아의 억압적인 키치를 배반했고, 망명 후에는 자신을 '공산주의에 저항한 비운의 예술가'라는 틀에 가두려던 서구 지식인 사회의 위선마저 털어내 버렸습니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토마시와의 자유롭고 가벼운 에로티시즘의 연대마저 머무름의 덫이 될까 벗어던졌고, 마침내 자신을 숭배하듯 사랑하며 아내와 결별까지 감행한 프란츠마저 버려둔 채 제네바를 떠납니다.

부당함의 극치

대학교수인 프란츠와 헤어지기로 결심한 순간, 쿤데라는 그녀의 결심을 ‘부당함의 극치’라 칭합니다. 프란츠는 선량했고 지적이었으며, 그녀를 진심으로 아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흠잡을 데 없는 선의와 숭고함이 사비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멍에였습니다.

프란츠의 헌신은 사비나를 '성스러운 여신'이라는 무거운 좌대 위에 올려놓았고, 그녀는 그가 구축해 둔 거대한 감상주의적 도덕률에 질식할 것 같았던 것입니다.

사비나는 프란츠의 그 흠 없는 지성과 선의를 훼손하고, 숭고라는 이름의 '멍청한 위력'에 폭력을 가하고 싶어 했습니다. "당신의 숭고한 사랑은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숨 막히게 할 뿐"이라는 내면의 반역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도주는 도덕적으로는 명백한 부당함이었지만, 실존적으로는 타인이 씌워준 우상을 깨부수고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파괴였으며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결국 하나의 정체성에 고정되는 순간 그녀가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키치에 붙잡힌다고 느끼는 겁니다.

배반의 궤적을 기록한 '중절모'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영화 포스트(1988,립 카우프만 감독)

사비나의 끊임없는 배반의 여정 속에서 유일하게 그녀 곁에 남은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조부에게서 물려받은 ‘검은 중절모’입니다. 이 모자는 본래 가부장적 권위와 지나간 시대의 완고한 규범을 상징하던 무거운 유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비나는 이 모자를 머리에 쓰고 속옷 차림으로 토마시 앞에 서며, 가부장의 엄숙함을 에로틱한 유희의 소품으로 전복시킵니다.

베일에 가려진 미지의 그 무엇.

가족과 조국, 신념, 그리고 사랑까지 배반한 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더 이상 배반할 것이 남아 있지 않았을 때, 사비나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해방의 기쁨이 아닌 텅 빈 공허였습니다. 과연 배반 그 자체가 그녀의 최종 목표였을까요?

밀란 쿤데라는 이 지점에서 인간의 오랜 착각을 흔들어 깨웁니다. 우리는 늘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삶의 방안을 모색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쿤데라의 통찰처럼, 우리가 갈망하는 종착점의 실체는 언제나 베일 뒤에 감춰져 있습니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도사린 진짜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움직인 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목표가 아니라, 어딘가로 끝없이 벗어나야만 한다는 미지의 충동이었습니다.

그녀는 무거운 억압을 벗어던지고 삶의 해방을 꿈꿨지만, 모든 닻을 끊어낸 배가 당도한 곳은 자유의 낙원이 아니라 아무것도 붙들 수 없는 공허한 '가벼움'이였습니다. 그것도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습니다. 무거움을 거부하며 날아올랐지만, 공기보다 가벼워진 존재는 끝내 허공 속에 표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움직이는 미지의 부름

우리는 종종 확실함을 쥐려 애쓰며 삶을 통제하려 듭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삶의 결정적인 궤적을 바꾼 선택들은, 그 결과가 무엇일지 전혀 알지 못했던 미지의 안개 속에서 내려졌습니다.

모든 굴레를 배반하고 중절모 하나만을 품은 채 가벼움의 끝자락에 선 사비나의 고독한 실루엣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과연 내가 온전히 알고 가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삶을 추동하는 가장 진실한 힘은, 끝끝내 베일을 벗지 않는 저 아득한 미지의 부름 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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