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에 '한 문장'

석양으로 오렌지 빛을 띤 구름은 모든 것을 향수의 매력으로 빛나게 한다.

과거를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는 향수의 매력은 무거운 현실을 기꺼이 살아내기 위한 내면의 긍정적인 방어 기제이다.

향수(鄕愁)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아스라한 정겨움은, 태어난 고향에 적(籍)을 두고 살아가는 감각이 희미해진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어 단어인 노스탤지어(nostalgia) 역시 비슷한 느낌이겠지요.

하지만 "넓은 벌 동쪽 끝으로..."로 시작하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떠올리며 마음 한구석에 고향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기성세대라면, 이 단어가 뿜어내는 오렌지빛 매력에 충분히 공감하실 겁니다.

오늘은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모티프로 사용한 '인생의 가벼움(Einmal ist keinmal)'을 이끌어 낸 향수의 매력을, 텍스트 위주로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석양으로 오렌지 빛을 띤 구름은 모든 것을 향수의 매력으로 빛나게 한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부 1장 중에서
석양으로 물든 바닷가의 풍경
석양으로 오렌지 빛을 띤 구름

가벼움의 또 다른 이름, 향수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이나 석양이 주는 이미지를 묘사한 문학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쿤데라는 여기서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시간의 흐름 속에 숨겨진 망각과 그리움의 속성을 날카롭게 통찰합니다.

그는 이 아름다운 문장을 빌려 인생의 덧없음과 가벼움을 역설합니다. 인생은 한 번 지나가면 결코 돌아오지 않는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며, 삶이 아무리 눈부시게 찬란하거나 혹은 잔혹했다 할지라도 결국엔 무의미해진다는 뜻을 담고 있죠.

로베스피에르의 단두대나 히틀러의 광기가 지배하던 끔찍한 시대에도, 사람들은 부모님과 함께하고 친구들과 뛰놀며 첫사랑에 가슴 설레는 일상을 살았습니다.

무심한 크로노스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시대의 끔찍함조차 석양의 오렌지빛에 물들어 묘한 그리움과 향수의 대상으로 빛나게 된다는 것을 이토록 시적으로 구사해 냅니다.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다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시간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쿤데라가 바라본 석양은 과거 전체를 온화하게 물들이는 마법의 빛입니다. 우리가 치열하게 겪어냈던 슬픔과 분노, 아픔과 사랑조차도 기억의 필터를 거치며 새로운 색을 입게 됩니다.

당시에는 그토록 무겁고 진지했던 감정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견딜 만한 '가벼움'을 얻고 아련한 그리움으로 치환되는 것이죠. 이는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기억에 관한 통찰과도 정확히 궤를 같이합니다.

기억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창고가 아니라, 현재의 내가 다시 만들어 내는 창조적 과정이다.

- 앙리 베르그송 -

오렌지빛 향수로 다가올 내일을 위하여

어쩌면 쿤데라가 말한 '가벼움'은 단순한 허무주의가 아니라, 무거운 현실을 기꺼이 살아내기 위한 우리 내면의 긍정적인 방어 기제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모든 것을 오렌지빛으로 따뜻하게 물들이는 향수의 매력 덕분에, 우리는 지나간 삶의 무게에 완전히 짓눌리지 않고 오늘을 다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당신의 과거는 지금 어떤 색의 구름으로 빛나고 있나요? 치열하고 버거웠던 어제마저도 기꺼이 아름다운 오렌지빛 향수로 껴안을 수 있기를 바라며, 문학 속 이 찬란한 한 문장을 마음에 담아봅니다.

💬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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